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4대 국회의원 선거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[[파일:Screenshot 2020-07-29 at 22.21.15.png]] ||<-7> {{{#fff '''개표 결과''' }}} || || 정당 || 득표수 || 득표율 || 의석수 || || [include(틀:자유당)] || 3,607,092 || {{{#254170,#55ffd0 '''42.1%'''}}} || '''127석''' || || [include(틀:민주당(1955년))] || 2,934,036 || {{{#000080,#5757ff '''34.2%'''}}} || 79석 || || [include(틀:통일당)] || 53,716 || 0.6% || 1석 || || [include(틀:대한독립촉성국민회)] || 50,568 || 0.6% || 0석 || || [include(틀:무소속)] || 1,857,707 || 21.7% || 26석 || || 총합 || 9,077,835 || 100% || 233석 || ||<-6> '''제4대 민의원의원 선거''' || || 지역 || [[자유당|{{{#fff 자유당}}}]] || [[민주당(1955년)|{{{#fff 민주당}}}]] || [[통일당|{{{#fff 통일당}}}]] || [[무소속|{{{#fff 무소속}}}]] || 합계 || || 서울 || 1 || {{{#fff 14 }}} || 0 || 1 || 16 || || 경기 || {{{#fff 15 }}} || 8 || 0 || 2 || 25 || || 강원 || {{{#fff 15 }}} || 2 || 0 || 3 || 20 || || 충남 || {{{#fff 15 }}} || 6 || 0 || 1 || 22 || || 충북 || {{{#fff 8 }}} || 4 || 0 || 1 || 13 || || 전남 || {{{#fff 18 }}} || 10 || 1 || 3 || 32 || || 전북 || 10 || {{{#fff 11 }}} || 0 || 3 || 24 || || 경남 || {{{#fff 20 }}} || 15 || 0 || 5 || 40 || || 경북 || {{{#fff 25 }}} || 7 || 0 || 6 || 38 || || 제주 || {{{#fff 1 }}} || {{{#fff 1 }}} || 0 || {{{#fff 1 }}} || 3 || || 합계 || {{{#fff 127 (54.50%) }}} || 79 (33.90%) || 1 (0.42%) || 26 (11.15%) || 233 (100%) || [[자유당]]이 과반을 얻었으나 127석으로 지난 번보다 의석 비율이 줄게 되었다.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무소속 의원 수는 26명으로 현저히 줄었다. 반면 [[조병옥]] 대표가 이끄는 [[민주당(1955년)|민주당]]은 총 79석을 차지하여 제1야당으로써 최초로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여 어느 정도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. 원내 정당은 자유당, 민주당, [[통일당]][* [[김준연]]이 창당한 민주당 계열의 정당으로 [[전라남도]]에서 1석을 얻었다. [[5.16 군사정변]] 직후 해산되었다.] 3개뿐이었다. 요약하자면 '''양당제'''의 경향이 나타난 첫 선거. [[여촌야도]] 현상은 더욱 뚜렷해져 자유당은 [[서울특별시]]에서 '''전멸에 가까운 참패'''를 당했다. 서울의 16개 의석 중 여당 자유당이 획득한 의석은 단 '''1곳'''. 민주당이 14석,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해 굴욕을 면치 못했으며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서울의 민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했다. 다만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[[경상도|영남]]과 [[전라도|호남]]에서 자유당이 앞섰기 때문에 최종 의석 수는 꽤 차이가 났다.[* 이 당시는 지금과 달리 남쪽에 인구가 몰빵되어 있어 영호남의 의석만 합쳐도 134석이었다.] 특히 총선 직전 해산된 [[조봉암]]의 진보당 지지세가 가장 강했던 [[경상북도]]에서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. 만약에 진보당이 총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. [[전라남도]] [[보성군]]에서는 자유당 [[안용백]] 후보가 [[닭죽 사건]]이라는 [[부정선거]]를 일으켰다가 당선무효가 되기도 했다. 근데 재선거 때 또 자유당 후보인 [[황성수]]가 당선되었다. 또한 [[이정재(조직폭력배)|이정재]]는 원래 [[경기도]] [[이천시|이천군]]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[[이기붕]]에게 선거구를 빼앗겼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